내게 있는 것 by 이재철 목사님
뭔 말이 필요할까
이재철 목사님의 말씀은 정말 영혼을 울린다.
때를 따라 말씀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


이 책에서는 자기 중심의 믿음의 소유자였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 사랑을 깨달은 후,
하나님 중심의 믿음의 소유자로 변화되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말씀하고 계셨다.


1. 믿음의 논리
언제나 처럼 목사님은 황제의 논리를 따르는 교회와 크리스천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사도 바울은 일평생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살았다. 그때 그가 누볐던 곳은 아프리카 벽지가 아니었다. 당시 터키는 로마 제국의 땅이었고, 그가 다녔던 곳은 그 중에서도 대도시들이었다. 온 세상이 웅장하고 화려하게 보이는 것 투성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 보이는 것들을 결코 자기 삶의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결국 잠시 후면 사라져 버릴 것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보이는 것들 속에서 보이지 않는 영원을 좇았고, 그 결과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우리 가운데 살아있다. -p.67

- 맨날 성경을 읽는다면서도,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선교를 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선교를 했던 로마가 웅장하고 화려한 그 로마라는 것이 왠지 연결이 안되었었다. 하지만 위 구절을 읽는 순간 갑자기 사도 바울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나와 사도 바울이 있던 시대, 공간이 달라서 내가 사도 바울처럼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건 어마어마한 착각인 것이라~ 사도 바울은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 보다도 몇백배는 화려한 권력의 중심에서도 황제의 논리가 아닌, 주님의 논리를 지키고 있던 것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을 "사도 바울"로 만든 원천이겠지.


그리스도는 당신만을 믿습니다. by 김수환 추기경 -p.73


2. 믿음의 자리

무소부재하신 하니님께서 손바닥만한 에덴동산 어느 공간 속에 아담이 숨어 있는지 모르실 까닭이 없다. 그럼에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 것은 공간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벗어나버린 아담의 중심에 관한 질문이었다. - "나를 향해 정조준되어 있어야 할 너의 중심이 대체 어디로 갔느냐?" -p.85
어떤 경우에도 그대가 고수해야 할 바른 믿음의 자리는 공간이 아닌, 바로 그대의 중심이다. - p.94

- 역시나 아무생각없이 읽어왔던 성경속의 한 장면이 너무나 의미있게 다가오는 순간을 체험하게 해 준 구절이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지금 나에게 하나님이 하고 계신 질문일 듯하다...나한텐 정말 나밖에 없다. 스스로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지만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다. 진짜 뻔뻔하다...죄인이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 (pistis, 피스티스)란 곧 '신실'이다. 주님의 말씀을 좇아 삶이 신실하게 변화되는 것, 이것이 성경이 요구하는 참된 믿음이다. 그러므로 자기 삶의 변화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자기 목적을 위해 신을 변화시키려는 것은 미신일 뿐참된 믿음이 아니다. -pp.112~113

- 나는 미신을 갖고 있는가? 나의 믿음이 진정 '신실'한 믿음인가? 변화해야 한다.


3. 믿음의 원천
생명의 원칙은 내면화, 외면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리키며 우리의 신앙이 진정 '산' 믿음이 되기 위하여도 신앙의 내면화, 외면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을 당부한다.


신앙의 내면화란 내가 어디에 있든 이미 내게 임해 계시는 주님에 대해 깨어 사는 것이다.  -p.158

'내게 있는 것' - 자기에게 임해 계신 주님에 대해 깨어 있는, 다시 말해 신앙의 내면화가 뿌리내린 베드로의 삶 속에 가장 먼저 나타난 외향화의 실체는 달라진 시선이었다. ...달라진 시선이란 먼저 달라진 관심을 의미한다. -p.165

작년에 비해, 지난달과 비교하여, 어제와 견주어, 그대의 관심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시간이 흘러가도 그대의 관심에는 미동의 변화도 없다면, 오직 야먕에 뿌리를 둔 출세와 성공만이 관심사라면, 그대는 지금부터 신앙의 내면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대의 관심은 사람에게 모아져야 한다. 그대보다 강하고 높은 자가 아니라 연약하고 낮은 자, 그대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자가 아니라 그대가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자, 그대에게 은과 금은 없지만 그대에게 있는 것 - 주님의 사랑으로 마주해야 할 자를 향해 그대의 관심이 흘러가야 한다. 그대 속에 계신 주님꼐서 그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시는 까닭이다. -pp.167~168

내게 있는 것 -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것을 그대 평생 그대의 신앙고백으로 삼으라. - p.203

- 목사님이 물으시면 대답할 말이 없다. 쥐구멍 속으로 숨고 싶은 기분만 든다. 왜! 나는 아직도 출세와 성공에만 관심이 있을까?? 그렇게 많이 말씀을 듣고 책을 읽어도 어째서 야망은 사라지지 않는걸까? 인간의 죄성때문인가? 아니다! 중심이 변화하지 않아서이다! 그걸 알고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주님! 주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안됩니다! 나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ㅠ_ㅠ


4. 믿음의 틀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려 함이 아니라, 그분 안에서 내가 변화되기 위함이다. -p.250

바울은 믿음의 요체를 '의, 절제, 심판'으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였다. '의'를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다. ..우리말로 '절제'라 번역된 그리스어 '엥크라테이아(enkratia)'는 흔히 오해하듯이, 조금 덜 하거나 아낀다는 말이 아니다. 칼로 무를 자르듯 아예 잘라내어 버린다는 의미다. ..심판은 세상 끝 날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 진행형으로 지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pp.263~265

눈을 들어 믿음의 큰 틀을 바라보라. 그대를 품고 계시는 하나님을 똑바로 쳐다보라. 그대가 어디를 가든, 그대는 그분의 틀 속에 있음을 잊지 마라. 그 믿음의 큰 틀을 날마다 의식하며 살라. 그분의 급유 속에서 이 세상을 가로지르는 진리의 기관차가 되라. 그대는 기필코 이 시대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역작 - 하나님의 액자소설이 될 것이다. 그대는 비록 볼품없어도, '내게 있는 것' - 그대를 품고 계시는 하나님꼐서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p.274

- 이 구절을 읽으면서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말씀도 말씀이지만 어찌나 문학적이신지..표현이 정말 기가막힌다. 다시한번 목사님에게 이런 재능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저 변화될 수 있도록 목사님이 하신 기도처럼, 나도 매일 기도하리라 다짐한다.


그대의 신앙수준이 베드로의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모른다.
비록 그대의 수준이 가이사랴 빌립보나, 대제사장 집 마당의 베드로와 같을지라도 전혀 절망할 것은 없다.
'그대에게  있는 것'
그대와 함께하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라.
그분을 믿음의 원천으로 삼아,
바른 믿음의 큰 틀을 지니고,
영원한 믿음의 논리를 반복하면서,
그대 중심으로 믿음의 자리를 고수하라.
그대는 앉은뱅이 같은 이 시대를 일으키는 성전 미문의 베드로,
이 사회를 부정과 부패, 불의와 절망의 감옥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이시대의 사도 베드로가 반드시 될 것이다.
그대가 믿는 주님께서는 박물관의 화석이 아니라,
살아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닫고,
깨달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대가 여태까지 이 책을 읽은,
단 하나의 이유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
- 책을 닫으며, p.276
by 華月 | 2007/03/19 00:04 | 독서 | 트랙백 | 덧글(0)
백년동안의 고독 by G.마르케스
읽은지는 좀 됐으니 간단하게..
사실 소설이 너무 땡겨서 읽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난 노벨문학상을 감상할 정도의 수준이 안되는듯..=_=
워째 정신없기만 한 것이 그다지 재미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독서"라는 행위자체에 갈증을 느끼고 있던차라
활자를 쭉쭉 읽어나가는 그 행위자체를 즐겼다
영어공부 한답시고 몇주째 짬날때마다 타임지를 읽었었는데
역시나 영어는 아직...=_=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자갈이 굴러다니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그런 답다압한 느낌이었는데
간만에 소설을 읽으니
잘 포장된 고속도로를 신나게 질주하는 기분이었다~


암튼...노인과 바다, 양철북에 이어
노벨문학상 받은건 왠만하면 읽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게 만들어준..
소중한 한권이었다 ♡
by 華月 | 2007/03/18 23:18 | 독서 | 트랙백 | 덧글(0)
행복을 찾아서
I like Will Smith...왜 윌 스미스를 좋아하지? 사실 생각해보면 윌스미스가 나온 영화중 재밌게 본건
맨인블랙 딱 하나다!!
근데 윌스미스가 나오면 왠지 재미있을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영화를 보러 갔다가 당한게 한두번...이 아니였건만..
또 당했다..=_=;

제목이 도대체 왜 행복을 찾아서인지...제목은 윌스미스 구직기로 바꿔야할듯한데..
진짜 빡세게 고생해서 벌어먹고 살아야 행복해진다는건가?

지난번에 본 아버지의 깃발도 그렇고
헐리웃에선 영웅담에 질렸나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더 끌린다고 생각하나보다

버뜨...난 그런 지지리궁상맞은 얘기를 그 큰 화면에서 빠방한 사운드와 함께 보고 싶지 않다고!!
멋진 영웅들의 화려한 스토리가 보고 싶다구!!
 
by 華月 | 2007/03/04 20:11 | 영화 | 트랙백 | 덧글(0)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by 한비야
영화든 드라마든 뭐든, 제목은 참 중요하다
독후감을 적으려고 책의 표지를 보니
제목이 그냥 중국견문록이 아닌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이었다.
"누구의" 중국견문록인들 이보다 더 흥미롭게 느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이름을 박는 것만으로 책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한비야"라는 사람의 존재감, 영향력에 대해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제목에 한비야씨의 이름을 박은 출판사의 센스에 웃음이 난다.
그녀의 이름을 갖다 붙여서 아마 몇배는 더 광고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얼마전에 재밌어 보이는 제목에 읽기를 시도했다 던져버린 모 베스트 셀러 생각이 났다
장사는 그렇게 하는거다..ㅎㅎ


여튼 갑자기 시작부터 제목얘기로 얘기가 빗나가 버렸지만
지도밖으로 행군하라 이후로 읽게되는 한비야씨의 두번째 책이다.
지도밖으로 행군하라에서 완전히 그녀에게 매료되었기에
읽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읽고 나니 역시나 그녀다운 냄새를 폴폴 풍기는 멋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중국견문록" 답게 중국에 대한 생각을 여러각도에서
본인의 경험과 어우러지게 풀어내고 있다.
읽는 내내 "진실되고 힘찬"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서 즐거웠다.


또하나 놀란것은 언어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었다.
마침 중국어에 꽂혀 있기도 하고, 틈만 나면 중국에 어학연수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중국에 어학연수 1년 다녀온 것 같아 더 기분이 좋다.
내가 나중에 어학연수를 가면 그녀가 본 것과는 사뭇 다른 것들을 보겠지만
그래도 책에서 본 것들이 많이 생각이 날거 같다고 생각했다.


꼭 언어에 대한 열정만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서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가까운 그녀이기에 "Why not me?" 라고 자문해본다.
What makes difference?  답은 알고 있다.
문제는 실행에 달렸지. As always.
책에도 나왔지만 "Haste makes waste!" 란다.
그래, 서두르지말고, 목표를 향하여 차근차근. 한걸음씩. 나아가는거야!


가을에 피는 국화는 첫 봄의 상징으로 사랑받는 개나리를 시샘하지 않는다. 역시 봄에 피는 복숭아꽃이나 벚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한여름의 붉은 장미가 필 때, 나는 왜 이렇게 다른 꽃보다 늦게 피나 한탄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준비하며 내공을 쌓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매미소리 그치고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 드디어 자기 차례가 돌아온 지금, 국화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그 은은한 향기와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늦깎이라는 말은 없다. 아무도 국화를 보고 늦깎이 꽃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 개나리는 봄에 피고 국화는 가을에 피지 않는가. -p.194
-마치 스맙노래의 가사와 같은..ㅎㅎ 잘알고 있는 얘기지만 마음이 그렇게 안되는걸. 자꾸 남이랑 비교하게 되고 그러는 내가 너무 한심하지만, 그래도 다시한번, 노래가 들릴때마다, 이런 글들이 눈에 들어올때마다 스스로를 세뇌시켜야한다!! 그동안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속에서 당한 세뇌에 비하면 이런 세뇌가 너무 안되있는게 문제라니깐! 토쿠베츠나 온리원~!


하늘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가? 그러려면 봄에 감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리고 여름 내내 물을 주고 퇴비도 주며 잘 보살펴야 한다. 그런 공을 들여 가을에 감이 탐스럽게 열리면, 그때 그 나무 밑에 앉아 있어야 비로소 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만약 봄, 여름에 애쓰지도 않았는데, 가을 어느 날 우연히 그 밑에 앉았다가 감을 얻었다면 당연히 그 감은 내 감이 아니다.  -p.226
-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알고는 있지만 자꾸자꾸 공짜를 바라게 되어버리는 나약한 나의 심성...=_=;; hen zhaoji 한 나의 성격에 문제가 있는거지...지금은 봄이다! 심을때다! 익기는 커녕 열매도 안익은 감을 따겠다고 조급해 하지 말자!


자, 이제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 일이 아주 엉뚱한 것일 수도,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을 수도, 혹은 흔히 말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제외시켜놓은 것도 있을 수 있다.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을 거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완벽한 지도를 가져야 길을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위대한 성인이나 비범한 사람들이야 가야 할 길이 시작부터 끝까지 뚜렷이 보이겠지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하나의 길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다음 길이 보이는 거니까. 하찮은 일이라도 좋다. 원래 하려고 했던 일과 거리가 먼 것처럼 보여도 좋다. 지금 이 순간,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 일을 시작하는 거다. 그러면 그 길이 다른 길로, 그 다른 길이 다음 길로 이어져 마침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pp. 313~314
- 지난번에 강인선 기자도 그랬지만, 뭔가 목표를 향해 올인하고 있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니 뭔가 희망이 보인다고 해야되나..위로가 된다 ㅎㅎ 그래..why not me? 남들이라고 하고 싶은거 해내는 세상, 나라고 못해낼게 뭐냐! 힘내자! 눈앞에 있는, 지금 주어진 이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자!


한 주 내내 열심히 돌아간 테이프를 주말에 다시 되감고는
다시 월요일의 시작과 함께 재생 버튼이 눌려지면 또다시 같은 노래를 재생하고 있는..그런 느낌이다
주중은 버리고 주말에 올인해서 지내는 패턴이 이어지고 있는데
주중에도 balance는 필요하다.
운동도 시작했겠다. 이젠 책도 좀 읽고..단어도 외우고..
피곤하다는 핑계는 집어 던질때가 되지 않았나?
남은 지구를 걸어서 도는 판에, 쇠도 씹어 삼킬 나이에 그정도도 못한다면 나의 청춘이 너무 슬프다!
힘내자! 화이팅!!
 
by 華月 | 2007/02/04 21:54 | 독서 | 트랙백 | 덧글(0)
이 책을 먹으라 by 유진 피터슨
바리새인.
바쁘다는 핑계속에서 그나마 매일 성경을 읽고
십일조를 꼬박꼬박 내고 있는 나를 보며 스스로 뿌듯해 하는
2006년의 나의 모습이다.


나에게 있어서 성경읽기는
물리적으로는 눈알을 굴리며 책장을 넘기는 그 이상의 행위에 지나지 않았고,
말씀이 나의 혈관을 타고 들어가 나의 영의 살이 되기는 커녕,
단순히 활자들이 각막을 잠시 떠돌다 책을 덮는 순간 나를 떠나버리는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상황에 이르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직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이 책을 나에게 던져주셨네~
"이 책을 먹으라"


이 책을 읽고 내가 얼마나 현세태의 풍조에 찌들어 있었는지,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얼마나 소홀히 대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제1부. 이 책을 먹으라
2. 성경을 먹는 거룩한 공동체
"오늘날 가장 선호되는 '텍스트'는 최고의 권위자인 자아인 것 같다." p.41
"나는 삶의 권위로서 성경보다는 개인의 체험을 받아들이는 관례가 만연한 현실에 반대하고자 한다. 오늘날 여러 화려한 영성들이 기독교의 성경을 현대적 상상력의 주변부로 무례하게 밀쳐 놓았지만, 나는 성경을 다시 중심부로 이끌어 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깊이 있게 하는 텍스트로 세우고자 한다. ... '영성' 행세를 하고 있는 종교심리학, 자아 개발, 신비적 실험, 실속 없는 경건의 모양 등과는 대조적으로 굳건하게 서 있는 이 텍스트를 제시하고자 한다." -p.42
- 유진 피터슨은 일단 꼬집고 시작했다. 입맛에 맞는 말씀만 골라서, 나 자신을 세우기 위해 성경을 읽고 있었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하지만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수술을 할 수 없듯이 나 자신의 곪아 터진 영성을 도려내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자각이었다. 나에겐 '나'뿐이 없다.


"책을 먹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조직에 동화시키는 것이다. 독자는 자신이 읽는 그것이 된다. 만약 성경이 하나님에 대한 잡담 그 이상이 되려면 반드시 내면화되어야 한다. ... 그 천사는 성 요한에게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그는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흡수해서, 말을 할 때에 그가 사용하는 구문 속에서 그 말씀이 꾸밈없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게 하라고 명령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건강하다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신경과 근육에 흡수되어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pp.48-49


3. 텍스트로서의 성경 :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것 배우기
"언어의 본질은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형성하는 것이다. 언어는 최선의 상태에서 인격적이 되고 계시의 특성을 띤다. 그리고 계시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형성한다. 무엇인가를 더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우리는 이 책을 '계시'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알려 주시기 보다 자기 자신을 보여 주신 것이다." pp.52-53


"계시의 모든 부분, 모든 양상, 모든 형태는 인격적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관계적인 분이시다. ..성경의 모든 읽기/듣기는 인격적, 관계적, 참여적 읽기/듣기를 요구한다...기독교의 독서는 참여의 독서다. 우리가 읽는 말이 우리 삶의 내부가 되도록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리듬과 이미지가 기도의 실천, 순종의 행위, 사랑의 방식이 되도록 하는 독서다." pp.57-59


"오늘날 자아를 이해하는 가장 대중적인 방식은 그것을 삼위일체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 여기서, 자아를 인생 최고의 텍스트로 규정하는 새롭게 공식화된 이 삼위일체는 성경을 무시하거나 금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성경은 존경받는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세 위격이신 성부, 성자, 성령이, 나의 거룩한 욕구와 거룩한 필요, 거룩한 느낌이라는 매우 개인화된 삼위일체로 대체된다." pp.64-65
- 이 대목에선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열심히 살고 있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와 내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실은 잘못된 중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 또한 예수님이 살고 계시던 그 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세우면서 경건한 척 하는, 바리새인들이 드글드글하는 시대인 것이다!


4. 형식으로서의 성경 : 예수님의 방식 따르기
"우리 삶을 성경에서 읽는 내용에 굴복시키면, 우리 이야기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우리 이야기를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야기가 진정한 이야기가 되는더 큰 배경이며 플롯이다." p.84
- 이제껏 사람들의 간증을 들을 때면, 우리 이야기에서 하나님을 보곤 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우리 이야기를 보라니! 유진 피터슨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누릴 수 있는 삶이 스케일이 다른 삶이라고 외치고 있다!!


"주해는 현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주해는 사랑의 행위다." p.102
"주해는 한결같은 겸손의 행위다. 이 텍스트에는 내가 모르는 것, 내가 영원히 모를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p.105
-주해를 읽으라고 하시네..읽어야죠! 읽겠습니다!


5. 대본으로서의 성경 : 성령 안에서 우리의 역할 해내기
"우리가 끊임없이 저지르는, 그러나 결코 행해서는 안 되는 잘못은 성경을 우리의 경험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다. 우리의 경험은 너무도 작다. 그것은 마치 골무 속에 바다를 담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성경이 계시하는 세계 속에 맞추어져 들어가는 것, 그 거대한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성경의 거대한 세계가 우리의 일상에 세계관을 부여하는 과학과 경제학과 정치학이라는 작은 세계를 흡수하는 방식을 인식하고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다." p.123
- 언젠가 이재철 목사님의 책을 읽고는 어떻게 이 목사님은 삶의 모든 경험이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목사님은 아마 성경의 세계관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것이 훈련이 되어 있나보다. 이 책을 먹으면, 나도 그게 가능하겠지? 생각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바른 지식은 순종을 통해서 나온다" by 칼뱅 p.126

"이 텍스트에 대해서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가 아니라 "내가 무엇에 순종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단순한 순종의 행위는 숱한 성경공부나 사전이나 용어집보다도 훨씬 더 빨리 우리의 삶이 이 텍스트를 향해 열리게 해줄 것이다." p.129
-단순한 순종의 행위...라는데, 단순한 순종이 왜이렇게 어려울까...순종!! 아브라함의 순종!! 믿음의 선조가 믿음의 선조로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 어렵다어렵다 하지말고..시도나 하자!


제2부. '렉치오 디비나'
6. 독자여, 주의하라
"예수님은 '네가 이제 막 읽은 것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물으셨다."p.144
"독자여, 주의하라. 기록된 말씀은 그것이 원래 사용된 맥락에서 근본적으로 이탈하게 되는데, 그 맥락이란 바로 살아 있는 음성이다." p.148
"그것은 단지 죽은 말이 아니라 부활을 기다리는 죽은 말이다." p.147


7. 주께서 나를 위해 귀를 파셨으니
"'렉치오 디비나'는 '렉치오'(텍스트를 읽는다), '메디타티오(meditatio, 텍스트를 묵상한다), '오라티오'(oratio, 텍스트를 기도한다), '콘템플라티오'(contemplatio, 텍스트를 산다)의 네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묵상은 바로 참여다." p.173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우리 존재도 말씀으로 창조하신다. ...그리고 인간 피조물인 우리에게 언어의 선물을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것을 듣고 이해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말할 수 있다. 반응하고, 대답하고, 대화하고, 논쟁하고, 질문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과 우리 사이의 쌍방향의 언어를 시작하셨고 그것을 보증하시는 분이다....기도는 인간에게서 시작되는 활동이 아니다. 심리학으로는 기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도 실천할 수도 없다. ..기도는 삼위일체의 사귐에서 시작되고 끝나며 그 안에 존재한다." pp.176-177
- 언어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말씀을 우리에게도 주셨다. 당신과의 대화에 참여시키기 위해서!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과의 대화를 차단하기 위한 수 많은 것들을 개발하였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대화하는데 문명이 발달할 수록 보이지 않는 사람과 대화하고, 티비에서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대화를 듣고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대화를 차단하는 것들을 발명해 내고 있다. 그러나 그분과의 대화를 대체할 만한 것이 이세상에는 없다. 안다면, 기도하자.. ㅠ_ㅠ


제3부. 한 무리의 번역가들
"성경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굴복하고, 그것을 기도하는 대신에 성경을 소유하고, 옹호하고, 기리는 것은 왜곡된 독서의 엄청난 세계를 은폐한다." p.232

"우가리트와 옥시린쿠스의 발견은 일상의 세계과 일상의 언어를 드러내 보여 줌으로써 성경의 독자들을 그들 자신의 일상으로 던져 주었다. ..옥시린쿠스의 발굴에서 놀라운 것은 신약 성경이 기록된 언어다. 즉 성령께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위해서 사용하시는 언어는 '성령의 언어가 아니라 평범한 길거리의 언어라는 것이다....우가리트의 발굴에서 놀라운 것은 문화 즉 우리의 히브리 선조들, 이스라엘 자녀들이 살았고 거기에서 생을 마감했던 문화다. (아주 더티한 문화였다)...옥시린쿠스와 우가리트의 발굴은, 텍스트의 정확성보다는 오히려 말의 어조와 훨씬 더 큰 연관이 있다. ...상향 모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의 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성경 텍스트가 은연중에 그 땅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pp.270-271
- 책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었다. 그동안 성경을 매일 읽으면서도 어찌나 성경에 무관심할 수 있는지..스스로에게 놀라우면서 다시한번 반성이다...암튼 성경은 조용한 곳에서 속삭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비밀스러운 말들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것 같은, 매우 타락한 문화권 속에서 매일 같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여 쓰여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정말 재미있는 분이시다!! 거룩하게 앉아서 우리가 다가오길 기다리시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오시는 분이시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오시려 애쓰시는데..우린 정말 전심전력을 다해 도망치고 있는 듯하다..왜그러지..=_=;; 이것이 죄있는 인간의 본성인가? 하나님과의 화해가 온전히 이루어 진다면, 이렇게 다가오신 하나님을 떨쳐 버릴순 없을거다!


더 인상깊은 부분도 많았는데 다 적었다간 책을 통째로 옮겨 적게 될 것같으니
이쯤에서 참아야 겠다.


유진 피터슨은 미국의 이재철 목사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피상적인 분석을 넘어서 문제의 본질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영성을 가진 목사님이시다!
그리고 뛰어난 이야기 꾼이기도 하다!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고
설득력있게 말씀을 풀어나가신다.


자. 좋은 말씀 먹었으니,
2007년엔 달라져야지!
나 자신을 텍스트로 세우기 위한 보조 도구로서 성경을 읽어 왔습니다.
이런 저를 용서해주시고,
이제는 매일 같이 말씀을 먹고
그 말씀으로 하여금 나의 행동의 모든 에너지 원이 되게 해주세요!
말씀을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하기에 급급한 사람이 되게 마시고,
먹은 말씀을 철저히 살아나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주께서 도와주실 걸 믿사오며, 다시한번 이렇게 좋은 책 읽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by 華月 | 2007/01/01 23:21 | 독서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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